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생애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악연 그리고 극복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hebestten.files.wordpress.com/jordan-thomas.jpg|width=100%]]}}} || 당시 조던과 신생강호로 거듭나고 있던 불스를 가장 괴롭힌 것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이른바 배드 보이즈였다. 강력한 팀워크와 수비, 거친 플레이로 악명과 명성이 동시에 높았던 디트로이트는 조던 외에는 사실상 별볼일 없던 1980년대 후반까지의 불스를 상대로 이른바 "조던 룰"을 적용해 불스를 무력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스는 1989년에 이 해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에게 2패를 안기며 선전했고, 1990년에는 7차전까지 끌고 갔지만,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슛 10개 쏴서 1개 성공시킨 피펜과 17개 던져서 3개 넣은 그랜트 덕분에~~ 아쉽게 패하는 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J_JordanRule02.jpg|width=100%]]}}} || ||<#d4001f><:> {{{#ffffff '''“조던 룰”''' }}} || 마이클 조던 문서에서 언급되어 있듯, 조던 룰이란 맨투맨을 가장한 한 선수에 대한 집중 수비로[* 일종의 지역방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핵심적인 요소가 다르다. 지역방어는 각 선수가 한 지역을 맡아 수비하고 공격수가 자신의 지역에 근접하면 견제하는 정도이다. 실제로 지역방어는 NBA급으로 운동능력과 돌파가 뛰어난 선수들이 있으면 막는데 거의 효과가 없으며, 지역방어 도입 전후로 앨런 아이버슨같은 단신 돌파형 선수들의 득점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조던룰은 오직 한 선수인 조던만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다른 선수들에 대한 수비를 상당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조던 한 명만 막으면 된다는 전술이다. 후술되듯이 돌파할 때마다 더티하기로 유명한 디트로이트 선수들에게 한대씩 돌려맞는건 기본이다.], 역사상 가장 더티하고 악명이 높은 수비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전술은 조던을 맨투맨으로 막는 선수가 조던이 공을 잡고 중앙으로 돌파해오도록 유도하면, 주변의 수비수들이 조던을 둘러싸면서 거칠게 막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비슷한 전술로는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에서 [[북산]]이 [[이정환(슬램덩크)|이정환]]을 상대로 한 4대1 전술, 그리고 2000년대에 보스턴 셀틱스가 르브론 제임스를 상대로 한 걸 들 수 있는데, 이 전술들보다 조던룰이 더 극악했던 것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NBA는 신체접촉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상을 보면 수비수가 핸드체킹(손으로 밀고 당기면서 공격수를 견제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2000년대 농구 같으면 플래그런트 파울(상대에게 부상을 입힐 수도 있는 도를 지나친 신체접촉에 주는 파울로 플래그런트 1을 두 번 받으면 퇴장, 2를 받으면 즉시 퇴장이다. 90년대에 도입.)을 받을 만한 것도 그냥 파울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자면, [[https://www.youtube.com/watch?v=X7r6vXeOfyQ|이게]] '''그냥 파울''' 이었다. [[http://www.espn.com/blog/truehoop/post/_/id/4958/undefined|기사]]에 나오지만 대놓고 레슬링무브 (크로스라인)을 해서 선수를 거꾸러뜨린 멕헤일이 벌금도 징계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앤드류 바이넘]]이 J.J. 바레아에게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비슷한 행위를 했을때 5경기 출장정지에 2만5천달러 벌금, 거기에 팬들로부터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 멕헤일은 이렇게 거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원래 아니라 얌전한 선수였다. 이때 셀틱스는 역사상 한 번도 레이커스에게 진적이 없었는데 시리즈 전적에서 밀리며 끌려가는 통에 위기감이 고조됐고, 반대로 레이커스는 이번에야말로 셀틱스를 이기겠다는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매직과 셀틱스 선수들을 보면 정말 혈전이었고, 버드와 매직은 1984 오프 시즌에 만나 광고를 찍으며 친해지기 전까지 '''정말 서로를 싫어했었다'''고 한다. [[https://boston.cbslocal.com/2016/05/05/danny-ainge-reminisces-about-a-time-when-the-nba-allowed-players-to-be-physical/|여담이지만 평상시 얌전한 멕헤일이 이 플레이를 하자 셀틱스에서 성질이 가장 불같기로 유명한 데니 에인지(현 셀틱스 단장)은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경기 시작 전에 팀미팅에서 "임마들아! 내가 심한 파울을 하는 유일한 선수라서 모든 경기장에서 야유를 받고 있잖아! 니들도 좀 파울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참고로 케빈 맥헤일은 57년생 / 1980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였고, 대니 에인지는 59년생 / 1981 드래프트 2라운드 31순위였다. 간접적으로 셀틱스와 레이커스 라이벌 의식의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멕헤일의 파울은 당시 기준으로도 심한 파울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조던은 이런 파울을 거의 일상적으로 당했다는 것이다. 조던룰은 기본적으로 조던이 돌파하면 페인트 존에서 둘러싸는건데 그렇게 둘러싸면서 툭 치는 건 양반이고 아예 목을 잡아 거꾸러뜨리거나 밀어 내동댕이치거나, 주먹으로 때리는게 보통이었다. 유명한 한 사진에서는 디트로이트 세 명이 조던을 둘러싼 가운데 아이제아 토마스가 조던의 '''고간'''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것도 있다. '''그렇게 해봤자 그냥 파울이니까.''' 현대 NBA에서 피지컬한 걸 생각하면 안된다. 플래그런트 파울이 그냥 파울 취급받던 시절이다. 정확히 말하면 플래그런트 파울은 1980-81시즌에 도입되어 해당파울을 할 시에 파울을 당한 팀 감독이 자유투를 던질 선수를 지정할 수 있었다. 문제는 페널티가 그뿐이었다는 것. 어차피 조던을 파울해봤자 정확한 자유투 실력을 지닌 (주전 중 팩슨은 자유투가 조던과 비슷했고, 크렉 하지스는 성공률이 조던보다 훨씬 높았지만 후보라 출장시간이 매우 적었다) 조던이 쏠게 뻔했기에 부담없이 그냥 파울하듯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문제점을 깨달은 NBA는 1990-91시즌부터 자유투 2개+공격권+공이 아닌 선수를 공격할 의도가 강할 시 심판 재량에 따라 퇴장(현재로 치면 플래그런트2)으로 페널티를 매우 강력하게 도입했고, 이후 몇차례의 개정을 걸쳐 현재와 같은 규정 (뉴저지에 위치한 리플레이 센터에서 경기장의 심판들과 함께 리플레이 판독 후, 한 경기 플래그런트 두개면 무조건 퇴장, 강도가 심한 플래그런트 파울이면 즉시 퇴장, 시즌에 걸쳐 일정 갯수 이상 플래그런트 파울하면 누적형 징계, 벌금 강화 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한 팀이 작정하고 한 명을 거의 두들겨 패다시피 막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다른 선수들은 프리가 된다. 그렇지만 1989년까지의 불스의 부실한 선수진으론 어차피 도움이 안됐기 때문에 조던만 막은 것. 조던 룰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1989년으로, 이듬해에는 본격적으로 성장해 위협이 되기 시작한 스카티 피펜까지 거친 수비의 대상이 된다.[* 물론 주된 대상은 당연히 조던이었다. 조던이 받는 견제와 피펜이 받는 견제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피펜은 돌파만 견제하면 됐지만, 조던은 공 잡기 전부터 물고 늘어져야 했다.] 조던룰이 얼마나 효과가 좋았는지는 수치로도 증명이 된다. 1989년 당시 조던은 정규 시즌에서 32.5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와 필드골 성공률 53.4%를 기록했다. 또 플레이오프 1, 2라운드에서는 37.5점 8.3어시스트 7.8리바운드 53.4% 성공률을 기록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 소모된 체력과, 플레이오프에서 더 강력해진 상대의 수비 때문에 기록이 정규 시즌에 비해 떨어졌던 반면에, 조던은 커리어 대부분의 기간동안 플레이오프에서 정규 시즌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해 디트로이트를 상대로는 29.7점 6.5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특히 필드골 성공률이 46%에 그쳤다. 또한 1990시즌에는 더 심한데 정규 시즌에는 33.6점 6.3어시스트 6.9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52.6%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 1, 2라운드에서는 40.2점(!) 7.2어시스트 7.2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54.4%를 기록한 괴물이 디트로이트전에서는 32.1점 6.3어시스트 7.1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46.7%에 그친다. ~~근데 플레이오프 시리즈 내내 32점 넣고 실망스럽다는 말도 조던 아니면 안나오지.~~[* 당연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활약이다. 다만 그 전까지 조던은 대괴수급 활약을 펼쳤는데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 점. 또한 플레이오프에서 안 그래도 그닥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닌 동료들이 단체로 버로우한 것(피펜은 이때 첫 올스타에 오르긴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팀의 2옵션으로는 많이 모자란 감이 있었다.)을 생각하면 저 정도로 디펜딩 챔피언을 꺾긴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이 시즌 우승한 디트로이트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진 유일한 팀이란 점에서 불스가 디트로이트에게 얼마나 버거운 도전자였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디트로이트의 피지컬한 수비에 지친 조던은 1989년 패배 이후 개인 트레이너 팀 그로버를 고용해 벌크업에 나선다. 그 전까지 조던은 근육을 늘리면 스피드가 떨어질까봐 근육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거친 플레이에 맞서 파워를 키울 필요성이 워낙 커졌고, 이에 그로버는 파워를 늘리면서도 운동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조던을 설득했다. 실제로 90시즌 이후에도 조던의 운동능력은 리그 최정상급을 유지했다. 이런 조던의 개인적인 노력에다가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등이 본격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팀으로서의 완성도가 더해지면서 결국 [[아이제아 토마스(1961)|아이제아 토마스]]를 필두로 한 디트로이트 배드 보이즈들의 집요한 견제를 가장한 폭력을 특유의 근성으로 헤쳐나간 결과 결국 그는 1990-91 시즌 디트로이트를 4-0으로 스윕하고 파이널에 진출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때 시카고가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를 맞아 1승 4패 - 2승 4패 - 3승 4패 - 4승 0패로 성적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다. 조던이 지금까지 신화적인 선수로 남아있는 데는 결국 자신의 힘을 키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데, 배드 보이즈는 분명 그 어려움 중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조던은 훗날 디트로이트에 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언제까지 악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디트로이트에서 그 커다란 벽을 넘지 못했으면 여섯 번의 우승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 디트로이트가 큰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하였다.[* 실제로 위의 설명처럼 다소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었던 조던은 이 이후로 근육을 본격적으로 불리면서 포스트업 등 힘을 쓰는 면에 있어서 더 강해졌고, 정신적으로도 디트로이트의 거친 수비를 이겨냈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여담으로, 4차전은 디트로이트에서 펼쳐졌는데 경기가 기울자 토마스 등 디트로이트 주전 선수들은 [[https://youtu.be/h_z_68NdbqM?t=6m41s|'''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가버렸다]]. 대개 지는 팀에서 주전 선수를 벤치에 앉히더라도 경기종료 후 상대방 팀을 축하해 주는 것이 매너인데, 심지어 상대방 팀 벤치 앞을 가로질러서 가버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를 까는 사람들이 있고 조던 본인부터도 '우리는 2년 연속으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졌지만 나는 그들 모두와 악수했었다. 그게 스포츠맨십이다.'라며 아직도 디트로이트를 까고 있으며 아이제아 토마스도 "저때 저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랬다."라고 항변하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어쨌든 바른 행동(high road)을 했어야 했다."라고 후회하고 있다.[* 물론 디트로이트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자세한건 [[아이제아 토마스(1961)]] 항목 참조] 이외에도 조던이 처음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때 토마스가 같은 팀원들과 작당해 조던에게 공을 주지 말자며 따돌렸다는 풍문도 있으며[* 일부 농구팬들 사이에선 토마스가 부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건 '''명백한 거짓이다.''' 아이제아 토마스 항목에도 나오지만 토마스는 조던을 따돌렸다는 낭설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부인한바있다. 가장 최근인 22년 7월 7일에 토마스는 트위터로 조던에게 "거짓말 좀 그만하고 사실을 말해." 라고 직접적으로 조던을 비판했다.[[https://nypost.com/2022/07/08/isiah-thomas-re-ignites-michael-jordan-beef-stop-lying|#]]. 요지는 그런 낭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확실하게 사실이라는 근거 역시 딱히 존재하지 않고, 토마스가 그것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토마스의 견해는 [[아이제아 토마스(1961)|아이제아 토마스]] 항목에도 잘 나와있다.][* 물론 조던 본인은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라스트 댄스]]에서 아이제아가 자신을 따돌렸다고 주장했으나, 이전 인터뷰에서는 그런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 한적도 있으니 본인 역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 경력이 있다.] 꼭 그 설이 아니더라도 조던과 토마스는 원수까지는 아니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사실 80년대 NBA의 스타플레이어 치고 디트로이트에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찰스 바클리]]는 배드 보이즈의 센터 [[빌 레임비어]]의 은퇴소식에 'Dear Bill, Fxxx You. Love Charles'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는 결국 [[드림팀]] 1기가 조던을 주축으로 꾸려질 당시 토마스가 드림팀에 승선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64.124.8.138)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