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삭제 역사 ACL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r1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대학 시절 === 취리히 연방 공대([[ETH Zurich]])에서 '[[수학교육과|수학]] [[물리교육과|물리 교육과]]'(mathematics and physics section of the teaching diploma course)를 전공했다. 후술되어 있지만 졸업할 때 교원 자격을 땄으며, 이 자격증을 광고하며 개인 과외를 구하려 한 적도 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의 아버지는 전기 공학자였고, 아인슈타인도 자연스레 전기 기술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고 한다. 잘하던 물리학과 수학 중에서, 대학 진학 후에는 물리학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수학에는 흥미로운 문제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물리학에는 그러한 문제가 수학보다는 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절대 아인슈타인의 수학 실력이 평범했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 상대론에서 쓰는 리만기하학은 당시 수학의 최전방 분야의 하나였고, 논문을 찾아서 봐야했으니 관심있는 수학 전공 학부생이나 그 상위의 코스를 밟고 있는 자가 아닌 이상 알기 힘들던 시대였다. 사실 그가 대학에 와서 수학을 등한시하고 물리학에 심취한 배경엔 대학 시절 교수였던 저명 수학자 민코프스키와의 트러블도 원인이 되었다고 여겨지는데,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이 너무 불성실한 학생이라 졸업한 것이 놀랍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와의 트러블은 아인슈타인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수 추천서를 받아내지 못해 취직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사실 그 외에도 시민권이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유가 있다. 하여튼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제외하고는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 벼락치기한 후, 시험만 겨우 통과하는 식. 이런 일은 그의 경력에도 문제였지만, 결론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친구들 이외에 별로 없게 된다. 그래도 완전히 논 건 아닌지 1899년에는 물리학에서 5.5점을 받는 등 평균평점 5.7/6점을 받아서 6명 중 1등을 하기도 했다. 1900년 졸업시험 때는 평균평점 4.91/6을 받아 6명 중 4등을 했다. 그리고 밀레바를 제외한 5명은 졸업을 한다.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8.219.68.12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