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보기 RAW blame 되돌리기 비교 조선 세종 (r9 RAW) ||<-2><table align=right><table width=350><table bordercolor=#bf1400><tablebgcolor=#bf1400><width=100%>{{{#!wiki style="margin: 0 0" ||<-2><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bf1400><tablebgcolor=#bf1400><color=#FFD400> '''조선 제4대 국왕'''[br]'''{{{+3 세종 | 世宗}}}'''[br][[파일:하단선.png|width=80&height=1]][br][[파일:세종.png|width=100%]] ||}}} || ||<colcolor=#FFD400> 출생 ||<colbgcolor=#fff>[[1397년]] 5월 15일 || || 사망 ||[[1450년]] 4월 8일 (향년 52세) || || 전임 ||[[조선 태종]] || || 후임 ||[[조선 문종]] || || 국적 ||[[조선]] || [목차] [clearfix] == 개요== 본명은 이도.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 병을 가장 많이 앓았다.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권력에 관심이 없었기에 왕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양녕대군읕 날라리였고 효령대군은 절에 들어갔다.] == 특징 == === 고기 애호가 === 반찬에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있다.오죽했으면 큰아버지 정종의 장례 때 세종이 6개월 간 고기를 먹지 않자 태종이 놀랐겠는가? 물론 태종은 자신이 죽고 장례를 치를 동안에는 고기를 먹이라고 명했다. === 독서광 === 독서 및 공부를 즐겨해서 상왕인 태종 빛 신하들마저 말렸을 정도다. 한 번은 세종의 몸이 좋지 않자 태종은 이 때를 노려 세종[* 당시 이름은 충녕대군]의 방 안 책들을 모두 치웠는데 하필이면 책 한 권이 병풍 뒤에 남아 있었고 그 책을 몇 천 번이고 읽었다고 전해진다. === 은퇴를 허락하지 않는 상사 === 신하가 나이가 들어 은퇴를 신청해도 잘 안 받아줬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황희. 모이 안 좋으면 가마를 보내줄테니 그것을 타고 오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은퇴를 잘 허락 안 했다. == 업적 == === 훈민정음 창제 === 조선시대 당시 이름은 훈민정음이고 일제 강점기 때 주시경 선생이 이름을 새로 만들며 한글이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글은 한문으로 되어 있었고[* 통일 신라 때는 향찰을 쓰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28자의 한글을 만들었다.[* 현재는 24자를 사용한다.] 물론 사대부의 반발이 심했다. 양반들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며 언문이라고 불렀고 최만리 같은 일부는 창제에 반대했다가 옥살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