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위키)]
== 개요 ==
한국어 [[위키]]의 시작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한 문서입니다.
== 역사 ==
=== 한국어 위키의 시작 ===
한국어 위키의 첫 시작이라고 알려진 위키는 [[노스모크]]이다. 2000년 11월 25일에 오픈하여 현존하는 한국어 위키 중 가장 오래 운영 중인 위키이다. 그리고 2002년 10월 12일 한국어 [[위키백과]]가 오픈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네이버]]와 [[다음]] 등의 서비스에 밀려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2007년 3월 1일 [[리그베다위키|엔하위키]]가 오픈되었다.
=== 성장의 시작 ===
[[다음]]에서 한국어 [[위키백과]]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있던 정보를 기증하면서 문서량이 늘어나는데 일조했다. 이와 더해 [[리그베다위키|엔하위키]]가 두루두루 많은 분야의 정보를 다루는 위키로 알려지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일반인들도 기사의 형태의 글을 써서 공유할 수 있는 위키였던 [[위키트리]]의 등장 이후 각종 SNS에 공유되며 위키가 정보 전달로써 매력적인 매체로 대중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2013년 한 고등학교의 교시에서 백괴사전의 '전라도 비하'이 담긴 내용이 언급된 사건을 시작으로 차츰 유저들의 관심 밖으로 밀리며 [[리그베다위키]]와 한국어 [[백과사전]] 중심의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와 [[대위키시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위키시대]] 및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2015년 4월 리그베다 위키의 소유자인 청동이 이용약관에 '저작권 기부'에 관한 내용을 넣었다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이용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동은 이에 대한 해명을 하지않았고, 4월 15일 이용자들은 기여 철회를 하나 둘씩 하며 본인이 작성한 내역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후 리그베다 위키가 해킹으로 접속이 불가능한 사태가 지속된 상태에서 차례대로 위키가 오픈되게 된다.
* 2015년 4월 16일 '''[[리브레 위키]]'''
* 2015년 4월 17일 '''[[나무위키]]'''
* 2015년 4월 18일 '''[[오리위키]]'''
5월에는 리그베다 위키가 잠시 접속이 불가능한 사이 엔하위키 미러가 오픈되었지만, 청동과의 법적 분쟁으로 폐쇄되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나무위키의 급성장이 시작되었다. 리그베다 위키보다 빠른 속도를 제공하였다는 점도 높게 작용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나무위키가 한국어 위키백과의 규모를 추월하면서 한국어 위키의 1인자로 올라가게 되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독자적인 위키를 개설하고자 [[디시위키]]를 6월에 오픈했다.
위키 오픈 행렬이 이어지자 위키 자체에 대한 관심도 또한 올라가는 배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군소 위키들또한 우후죽순 오픈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대위키시대]]라고 부르곤 한다. 대표적으로 대위키시대에 등장한 위키들은 [[오사위키]], [[대한위키실록]] 등이 있다.
=== 2축 중심 ===
여러 위키들이 오픈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위키백과]]와 [[나무위키]] 등 대형 위키로 이용자가 몰리자 많은 군소 위키들이 서비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대형위키와의 차별화 실패가 큰 패착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9년 [[구스위키]]의 서비스 종료를 기점으로 [[위키트리]]의 위키기자 서비스 종료, 2021년 위키쨩 서비스 종료 등 많은 군소 위키들의 운영 중단되는 사태가 반복되었으며 이는 [[나무위키]]와 한국어 [[위키백과]]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다수의 군소 위키들 중에도 독보적으로 이용자 수를 확보했던 [[디시위키]]는 2022년에 접어들면서 이용자 수 500명 선이 붕괴하는 등 쇠퇴의 길에 접어 들게 되었다.
대다수의 이용자들이 대형 위키에 자리잡았으며, 군소 위키의 오픈 빈도 또한 줄어들며 추가적인 변동이 생기기 힘든 구조로 굳어져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오픈나무]] 기반의 소형위키 등장 ====
[[분류: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