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와 더불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대표하는 MC였다.
1991년 5월 5일,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참고로 그와 함께 대상을 탔던 사람은
양원경. 동기로는
감자골 4인방인
김국진,
박수홍,
김수용, 그리고
유재석,
남희석,
윤기원,
최승경,
이영재 등이 있다.
한바탕 웃음으로 등 KBS 개그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보였으나, 희극인실 선배들과의 마찰로
김국진,
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자진 방출의 길을 택했다. (일명 감자골 4인방 사건) 이후 김국진과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마치고
MBC로 복귀했다.
데뷔 초에는 개그맨으로도 꽤 웃겼다. 그러다가 데뷔하고 조금 지나고부터 PD들이 콩트 뿐만 아니라 진행하는 코너나 역할을 조금씩 시켰다. 또 감자골 사건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돌아와서 꽁트연기를 안 한지 너무 오래 되었던데다 방송의 특성상 바로 다시 개그 프로그램을 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었다. 이러자 개그맨으로서는 출연요청이 잘 오지 않게 되었고 금방 적응할 가능성이 높은 MC 쪽으로 점점 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마게임 등에서 MC 자질이 드러나며 발탁된다. 특히 MBC로 복귀 후 김국진과 함께
21세기위원회의 MC를 맡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이 당시
1997년 외환 위기 시대상과 절묘하게 맞물린 흥행으로 인해 그가 다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브레인 서바이버 MC,
대단한 도전 MC 등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MBC 굴지의 예능 MC로 발돋움한다. 당시 MBC 예능을 쥐락펴락했던
이경규에게는 좌용만 우
형기가 있었으며, 단독 MC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당시
이휘재,
남희석보다 높은 등급의 MC였으며
신동엽과 비슷한 등급이었다. 당시
유재석,
강호동은 MC로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이다.
MBC 방송연예대상을 몇 차례나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 해씩 걸러가며 이경규와 김용만이 대상을 나눠먹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 방송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특히
KBS 와는 껄끄러운 사이가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KBS의
퀴즈 프로그램인
1 대 100의 초대 MC를 맡았으나 1년 만에
손범수로 교체되었다. 이후
강병규를 대신하여
비타민의 진행을 정은아,
전현무와 함께 맡으면서 다소 나아졌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이야기쇼 두드림의 메인 MC도 맡으면서 KBS에서도 고정 프로그램이 2개로 늘어났다.
2009년 후반기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하차(스튜디오 녹화 폐지)했던 것을 비롯해 출연하는 방송 수가 줄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중인 듯 했으나,
일밤에서 다시 한 코너를 맡았고, MBC 연예정보프로인
섹션TV 연예통신은
2013년 3월 17일까지 진행했다.
날방송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화면 보면서 입으로 끝내는 프로그램을 주로 맡기는 했다. 그리고, 연기에도 도전하면서
논스톱5와 몸으로 뛰었던
SBS 작렬 정신통일은
흑역사라 스스로 웃기려 들기보다는 몇몇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
이경규,
박명수) 띄워주고 보완해주는 데 뛰어나며, 발음이 정확하고 순발력이 뛰어나 교양과 오락을 겸한 인포테인먼트 계열 예능 MC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 단골로 MC를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트너가 아무리 못해도 옆에서 김용만이 받쳐주면 그럭저럭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김용만을 붙여줘도 답이 없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이런 경우 그 사람은 MC로서는
완전히 답이 없다.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김용만 본인이 개그맨으로서 웃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각 잡고 웃기려면 얼마든지 웃길 수 있지만, 남을 띄워주고 보완하는 데 더 능숙할 뿐이다. 일밤에서 방영했던 코너 <건강보감>에서는 '같이 등장하는 다른 모든 MC들과 심지어 게스트들에게까지 갈굼당하는 남자' 기믹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웃음의 50% 이상을 책임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한 시대를 지배했던 MC답게 능력은 출중하다 할 수 있으며, 진행 능력으로만 따지면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런 진행능력을 가장 잘 발휘한 게 브레인 서바이버. 지금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세바퀴를 혼자서 진행한 셈이다. 중구난방 개판 오분 전이 되기 십상이었던 코너를 잘 끌고 간 원동력은 김용만의 신들린 진행 능력이었다.
선우용녀, 양희은, 이경실 등 세바퀴도 고정 게스트들이 기가 셌다고 하지만 브레인 서바이버는 당시에 고정으로 노사연, 조형기, 김흥국, 선우용녀나 양희은과 비슷한 세대의 대선배 연예인들도 자주 한두 명씩 게스트로 나올 만큼, 더 강하면 강하지 절대 덜하진 않았다. 게다가 당시 김용만은 30대 중후반으로, 2010년대 초 40대였던 세바퀴 진행자들의 나이보다 더 어렸다. 그럼에도 혼자 40~50대 선배 연예인들, 20대 어린 연예인들 할 것 없이 잘 소통하면서 진행했다. 진행능력이 역대급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14]부업 활동이 활발하며 외식사업으로 '닐니리 맘보'라는 국수집을 경영하고 있다. 본인 말로는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고 한다. 국수 체인점 치고는 국수 인심이 좀 후한 편이라, '많이 드시길 원하시는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라고 가게에 써 붙여져 있다. 같이 나오는 김치(비빔국수에 들어간다)는 좀 달짝지근한 편이다. 그 외에 여행사도 했는데 막 기를 펼 시점에
신종플루 등 손대는 일이 많았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듯하다.
절친이자 형인 김국진과는 MBC 이적 이후 서로 간의 리즈 시절과 슬럼프 기간이 정확하게 교차하는 묘한 관계가 있다. 과거
테마게임 때인 김국진의 전성기 시절 김용만은 그늘에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김용만이
목발을 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 있어서 방송을 쉬기도 했고 연예계를 떠날 생각도 했을 정도다. 반면 김국진이 여러 가지 문제로 방송을 접었을 때인 2000년대 초반에 김용만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 후반 김국진이 방송을 복귀하면서 재기에 성공할 때 김용만은 부진하는 느낌이다. 참고로 김용만이 아래 사건으로
섹션TV 연예통신 MC 자리에서 하차하자, 그 자리에 김국진이 들어가기도 했다. 2010년 MBC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방송에서는 두 사람이 특별 MC로 함께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김용만과 김국진이 서로 동고동락한 관계로 시작한 절친으로 서로 물심양면 도와주는 관계로 이끌어주다 보니 공교롭게 묘한 교차점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용만이 어려웠던 1990년대 중후반 시절에는 김국진이 김용만에게 당시 40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주면서 은퇴를 강력하게 만류한 덕분에 김용만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게 되었다고 하며, 김국진의 2007년 복귀 당시에도 사실 MBC 예능국에서 영향력이 컸던 김용만이 상당히 힘을 써준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과거 잘나갔던 개그맨일지라도 오랜 휴식 뒤 무릎팍도사 출연과 동시에 서브코너 라디오스타에 중간투입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메인으로 앉혀 복귀시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15]2012년에 들어선 새로 맡은 프로그램만도 4개였다.
KBS의 이야기쇼 두드림,
SBS의
세대공감 1억 퀴즈쇼,
JTBC의
닥터의 승부,
MBC의
승부의 신. 기존의
섹션TV 연예통신, 비타민,
스타부부쇼 자기야와 더불어 2012년에 맡고 있는 지상파 메인 MC만도 각 국에서 2개씩 6개. 이 분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수치라고 하겠다. 특히 1억 퀴즈쇼의 경우에는 생방송에도 불구하고 방송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 안정적인 진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2012년 말에 들어서 새로 맡은 프로그램 4개 중 2개가 종영되었다. 이후 2024년 현재까지 여러 케이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축구 유튜브 채널 ‘동네축구형 용마니’를 런칭했다. 재한 외국인 패널들
[16]과 함께 하는 해외축구 이야기가 주된 콘텐츠로, 채널 오픈 2년이 안 되어 구독자 10만여 명을 모으며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