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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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4대 국왕
세종 | 世宗
파일:하단선.png
파일:세종.png
출생
1397년 5월 15일
사망
1450년 4월 8일 (향년 52세)
전임
후임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국적

목차
1. 특징
1.1. 고기 애호가1.2. 독서광1.3. 은퇴를 허락하지 않는 상사
2. 업적
2.1. 훈민정음 창제


== 개요==
본명은 이도.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 병을 가장 많이 앓았다.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권력에 관심이 없었기에 왕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1]

1. 특징 [편집]

1.1. 고기 애호가 [편집]

반찬에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있다.오죽했으면 큰아버지 정종의 장례 때 세종이 6개월 간 고기를 먹지 않자 태종이 놀랐겠는가? 물론 태종은 자신이 죽고 장례를 치를 동안에는 고기를 먹이라고 명했다.

1.2. 독서광 [편집]

독서 및 공부를 즐겨해서 상왕인 태종 빛 신하들마저 말렸을 정도다. 한 번은 세종의 몸이 좋지 않자 태종은 이 때를 노려 세종[2]의 방 안 책들을 모두 치웠는데 하필이면 책 한 권이 병풍 뒤에 남아 있었고 그 책을 몇 천 번이고 읽었다고 전해진다.

1.3. 은퇴를 허락하지 않는 상사 [편집]

신하가 나이가 들어 은퇴를 신청해도 잘 안 받아줬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황희. 모이 안 좋으면 가마를 보내줄테니 그것을 타고 오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은퇴를 잘 허락 안 했다.

2. 업적 [편집]

2.1. 훈민정음 창제 [편집]

조선시대 당시 이름은 훈민정음이고 일제 강점기 때 주시경 선생이 이름을 새로 만들며 한글이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글은 한문으로 되어 있었고[3] 이 때문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28자의 한글을 만들었다.[4]
물론 사대부의 반발이 심했다. 양반들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며 언문이라고 불렀고 최만리 같은 일부는 창제에 반대했다가 옥살이를 했다.
[1] 양녕대군읕 날라리였고 효령대군은 절에 들어갔다.[2] 당시 이름은 충녕대군[3] 통일 신라 때는 향찰을 쓰기도 했다.[4] 현재는 24자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