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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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敎育 / Education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교사나 교수를 통해 지식을 배우는 것과 기술자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활동을 총칭하며 특히 교육학에서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게끔 가르치는 것'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테러, 범죄 등 비윤리적인 것들은 교육으로 묶지 않는다.
국어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신조어 참교육 역시 엄밀히 말하면 교육학적 정의를 모르고 쓴 중의적인 단어이다. 또한 '누군가를 교육하다'라고 표현해야 하며, '누군가를 교육시키다'는 잘못된 사동 표현이다.
=== 교육의 요소와 종류 === * 교육의 3요소: 교육자와 학습자(상황에 따라 교육자와 학습자가 동일한 경우도 있음) 그리고 교육수단(주로 교재) * 장소: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눈다.[1] * 가정 교육: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서 가치관, 태도, 도덕관념등을 습득하게 된다. 가정교육은 다른 교육과는 달리 시기를 놓치면 받기가 불가능하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나중의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 학교 교육: 학교에서 정해진 교육과정(curriculum)에 따라 이행된다. * 사회 교육: 은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으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이다. * 방향성 - 교육은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바람직하다'의 기준이 사회 체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2]=== 학습 · 수업과의 차이 === * 학습: 교육자 없이 일어나는 개인의 변화는 학습이라고 한다. '교육의 요소'엔 교육자(또는 교수자)와 학습자, 그리고 교육의 대상인 교재[3]가 있는데 학습은 교육자가 부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들어 특별한 교육자 없이 교육(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게 하는 활동)이 빈번히 벌어지게 되어 뜻을 혼용하지만 학습은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 중 '생득적인 반응에 의한 변화', '성숙에 의한 변화', '일시적 변화'를 제외한 영속적인 변화만을 의미한다. * 수업: 수업은 어떤 의도나 계획에 따라 학습자와 학습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말하는 '계획'이란 크게 보면 교육과정이 된다. 교육과정은 계획을 담은 문서의 의미로 축소했을 때 국가[4]와 지자체의 교육청, 학교와 교사가 만드는 것이다. * 그 밖에 교육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 훈련, 교정, 교화와 혼동해서 잘못 쓰기도 한다. 교정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의 범위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된 의미이며, 교화는 교도소에서 쓰이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비도덕적이고 비교적 강제적인 방법이 많이 쓰이는 데다가 학습자의 의도와 자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하물며 세뇌도 교육과 상극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교육(敎育)의 어원 ===교육(敎育)이란 한자어는 《맹자》의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에서 따온 단어이다.[5] 한자를 풀이해보면 갓난아이를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부연을 하자면 敎는 爻와 子의 합친자(이끌 교)에 攵(치다 복)가 합친 글자다. '爻+子'는 자식이 본받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고, 거기에 회초리가 들어가는 식이다. 즉, 본받도록 하고 사랑의 매를 든다는 소리지, 무턱대고 때려키운다는 뜻이 아니다.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경우에는 결국 누군가가 배우라고 준 것이다.
서구권에서의 교육이란 단어는 Education과 Pedagogy다. Pedagogy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노예(Paidagogos)에서 유래했는데 교육노예가 어린이를 배움의 장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잘 알려진 Education은 라틴어 'educo', 'educare'와 'educe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e(밖으로), duco(꺼낸다)는 뜻으로 각각 '양육하다', '바깥으로 끄집어내다' 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선천적 능력을 발현시킨다는 의미.
== 교육의 기능 == * 개인의 발전과 완성(단, 천재에게는 역효과) * 사회의 발전에 기여 * 경제 성장: 현대의 교육 제도가 보급된 원인이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 수요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 기대 수익의 증가[6] * 중산층의 증가[7] * 높은 투표율[8] * 개인주의 * 문맹 감소 * 남녀평등 * 유아 사망률 감소 * 위생 개선 * 산업 재해 감소 * 국가 경쟁력 강화 * 숙련 기술 인한 제조업 발전 * 복지국가 출현 * 민주화: 이는 유럽만 해당. 교육 수준이 높아져도 민주화의 정도는 여전히 낮은 국가가 많았다.[9] * 일반적으로 의도한 목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시 교육의 역기능이라고 부른다. * 교육에 기능적인 부분만 있다고 보지 않는 사회학자(사상)들도 있었다. 자세한 것은 교육/논쟁 문서를 참조.
== 교육의 종류 == * 공교육: 국가 및 자치단체가 운영한다. * 사교육: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교습과 학원. 역사적으로 부유층과 권력층은 사교육을 선호했다. 교육이 대중들에게 보급된 이후 학원교육체계가 들어섰다. 어학, 기술을 위한 학원이 일반적이지만 한국, 일본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국가에서는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도 널리 존재한다. * 유아교육: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며 일반적으로 어린이집, 유치원생 등 유아들이 받는 교육을 지칭. 유아교육과에서 교사를 양성한다. * 초등교육: 초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1차 교육이라고도 한다. 여러 국가에서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주로 교육대학교에서 교사를 양성한다. * 중등교육: 중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2차 교육이라고도 한다. 국가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어있는 국가도 있고 통합되어 있는 국가도 있다. 주로 사범대학의 각 교육과에서 교사를 양성하거나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과정으로 교사를 양성한다. * 고등교육: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전문 대학 이상의 수준이 이루어지며 3차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오해: 흔히들 고등학교가 고등교육이라고 착각하는데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왜 고등교육이 아닌데 고등학교라고 불리는지는 하단의 교육사 속 통감부 시절 교육을 보면 나와 있다. * 직업교육: 취업을 목표로 당해 직업이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 및 태도를 습득하기 위한 교육. 중등교육과정에는 특성화고교가 담당하고 고등교육은 전문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허가받고 운영하는 직업전문학교가 있다. * 평생교육: 인간은 학교를 졸업하면 끝인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우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한다. 게다가 자격이 필요한 경우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 또 교육을 받거나, 이수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기거나 취미를 갖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며 좁게는 각 회사나 기업의 교육팀과 각 대학별 평생교육원에서 평생교육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다. * 가정교육
== 교육의 역사 ==
자세한 내용은 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교육사 |
== 여러 사상가들의 입장 == * 영국의 교육 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교육이 '가치어'라는 점과 교육의 준거에 주목했다.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이며 이처럼 교육은 좋고 선한 의미에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 피터스의 주장이자 현대 교육학에서 유의미한 이론이다. 교육의 준거란 규범적 준거, 인지적 준거, 과정적 준거를 말한다. 규범적 준거란 교육목적으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준거는 교육내용에 관련된 것이며 교육받은 사람이란 부분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적인 지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적 준거는 교육이 교육받는 학습자를 존중하여 인간의 이해와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함을 말한다. 최소한 이 3가지 준거를 가지지 못하면 교육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 이마누엘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된다.'라고 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고,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은 교육을 받는 유일한 동물이며, 교육을 통해 동물성 대신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자 양성을 주요목표로 보았고 도덕적 인격교육을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왜 교육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미 있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가정하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왜 인간에게 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왜 사람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의 정당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 플라톤은 '덕(德)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교육이 과연 사람을 훌륭해지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철인 통치자의 자연적 소양을 중시하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 가능성의 문제가, '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방법의 문제나 '교육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하는 한계의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즉,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교육은 역시 정당성을 잃게 된다.
== 교육에 관한 논쟁 == * 해당 문서 참조.
== 여담 == * 국가에서 세우는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10]라고 할 만큼 개인과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 가장 효율성을 추구하는 분야이지만, 목표가 광범위하고 심지어 서로 상충되는 목표들이 혼재하고 있는데다 교육에서 다루는 각종 지식들의 학습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지상목표 달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포기해야 하는 분야의 대표격이다. 또한 교육의 효율은 늦게 나타나며 또 효율적이었는지 측정하기도 어렵다는 면도 교육과 효율을 가까우면서도 멀게 만든다.
== 교육 관련 어록 ==> 한 인간에게 교육을 시작할 때의 방향이, 훗날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The direction in which education starts a man will determine his future life.>---->플라톤
교육이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일 수 있다.>- 노자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 (十年樹木百年樹人) >- 관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포크 문서 | 위 문서의 원문은 나무위키의 교육(r230 RAW)입니다. |
[1] 장소와 무관한 교육으로 원격교육이 있다.[2] 교육학자들은 교육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하나 어려운 부분이다. 자세한 것은 교육/논쟁 문서의 '교육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 문단 참조.[3] 좁게 보면 교재나 교과서나 실험도구, PPT 같은 매체 같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교과, 학문 등 교육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교육부라거나 한국으로 치면 한국교육개발원[5] 원문은 맹자 진심장의 구절이다. 해당 구절을 소개하자면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 군자에게는 세 기쁨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은 이에 없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으니 그것이 첫 번째 기쁨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기쁨이며,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고 기름을 얻는 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영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는 소리다. 삼락이라는 한자어의 연원이기도 하다.[6] 학력에 따라 생애 임금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의 폭이 크지는 않음[7] 단, 빈민층과 부유층은 교육제도가 의도한 계층이 아니다.[8] [9] 대한민국만 해도 80년대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안 했고 반공 교육 위주만 하였다. 다만, 90년대 이후부터 '정치·경제' 교과서에 민주주의 교육을 크게 다루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노동삼권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교육 수준과 민주화가 무관하다라고 볼 것은 아니며, 민주화가 교육 수준 상승만으로 당연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0] 말 그대로 100년 앞, 즉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워야 할 계획. 저위에 관자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원래의 의미이다.